[투데이코리아=강주모 기자] 여당인 한나라당이 당 쇄신을 한다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가운데 당 인사인 고승덕 의원의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폭로'가 당의 내홍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기네 집에 불이 났는데, 물동이는 날라주지 못할망정, 대형 선풍기를 틀어댄 형국이다.

고 의원은 이번 18대 국회 들어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서 나중에 대표로 선출된 한 의원으로부터 '돈봉투'를 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후보 중 한 명이 대의원인 나에게 돈 봉투를 준 적이 있다"며 "봉투 안에 300만원이 들어 있었고, 나는 이런 건 안 줘도 지지한다는 의미로 돌려줬다"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밝혔다.

실제로 한나라당 안팎에는 이미 돈봉투를 돌린 전직 당 대표와 돈봉투 살포 역할을 맡은 비례대표 현역의원의 실명이 나돌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비상대책위원회의 용퇴 주장에 강력 반발해온 친이계들 인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검찰 조사에서 실명이 밝혀진다면 이 ‘특정 인사’의 공천은 이미 물 건너간 게 될 것이다.

고 의원의 이 같은 폭로를 두고 당사자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입단속'을 지시하면서도 노심초사 전전긍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구식 의원의 비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연루 의혹을 받아, 결구 최구식 의원을 탈당처리한 후 강력한 인적 쇄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상황이었던 만큼 이번 충격은 불난 집을 향해 대형 선풍기를 트는 것을 넘어서서 대형호스로 기름을 분사하는 격이라는 지적이다. 한 당직자는 "안 그래도 당 내부적으로 좋지 않은 시국인데 하필이면 이때..."라며 볼멘 소리를 내기도 했다.

18대 국회 들어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정확히 세 번 치러졌다. 고 의원은 홍준표 전 대표가 선출됐던 지난 해 7.4전당대회는 이번 돈봉투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했다. 자연스레 박희태 국회의장과 안상수 전 대표에게로 시선이 쏠린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누가 돈봉투를 뿌렸는지 밝혀지겠지만 이로 인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검찰 수사는 '돈봉투 사건'의 당사자를 밝혀내는 것은 물론, 돈의 출처까지도 밝혀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금껏 타성에 젖어 있던 정치권의 악습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여야를 불문하고 전당대회가 있을 때마다 돈봉투 이야기는 실체만 없을 뿐 공공연히 들려왔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고 의원이 4.11 총선을 100여 일 앞두고 왜 이런 폭로를 하게 되었는지의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명함만 내밀면 당선은 보증수표로 불리는 강남지역 및 영남권 현역의원들 90%가 물갈이돼야 한다는 내부문건이 나온 데 따른 전략적인 선택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즉, 고 의원은 자기 자신은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언론을 통해 어필함으로써 4.11 총선에서 이득을 챙기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향후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돈봉투를 뿌린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사실 그대로를 성실하게 답변하겠다"고 했다. 그가 검찰 조사과정에서 왜 하필 당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돈봉투 사실을 폭로했는지,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염두한 게 아닌지 등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 이번 고 의원의 폭탄발언을 계기로 선거 때만 되면 불거지는 '돈봉투 사건'이 더 이상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지 않게 되길 국민들은 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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