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유혹하는 돈 많은 바람둥이 ‘영민’ 역 ... 맛깔 난 감초연기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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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김범태 기자] 가수 송창식의 노래 가사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는 흥겨움과 재미, 잔잔한 사랑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한 남자가 동네에서 인기 많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과정을 풋풋하게 그려낸다.

‘민선’을 짝사랑하는 ‘지환’과 그들을 둘러싼 7명의 등장인물이 각각의 캐릭터로 어우러지며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이 작품에서 단연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바로 ‘김영민’ 역을 맡은 박세준이다.

‘영민’은 고급 승용차와 화려한 액세서리 등 재력을 앞세워 여주인공 ‘민선’을 유혹하는 돈 많은 바람둥이. 하지만 가슴 한켠엔 ‘민선’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지닌 ‘순정파 마초’다. 그의 능청스럽고 맛깔 나는 감초연기 덕분에 이 작품은 관객에게 더욱 친근하고 가볍게 다가선다.

사실 제작 초기 단계만 하더라도 ‘영민’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역할구상에 없었다고 한다. 송창식의 노래 원곡에도 등장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나 자칫 작품의 스토리라인이 너무 무겁게 흐르는 것 같아 ‘웃음코드’를 책임져 줄 제3자가 필요했다.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영민’이다. 박세준은 작가의 이런 의도를 십분 살려냈다.

그는 만화적인 요소도 함께 갖고 있는 ‘영민’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그의 등장은 곧 이 작품의 ‘웃음 포인트’가 된다. 혹여나 지루해질 수 있는 장면에 등장해 엔도르핀을 발산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는 절제가 내재되어 있다. 때문에 끝내 ‘민선’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영민’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관객은 잔잔한 페이소스를 느낀다.

“사실 드라마에 확 빠져드는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죠. 하지만 배우로서 작품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하게 여겨졌어요. 연출이나 작가가 ‘영민’이란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살려내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풀어가야 할 숙제가 있지만,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습니다”

‘영민’은 ‘민선’을 좋아하는 ‘지환’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에게 ‘공공의 적’이다. ‘바람의 찍사’라는 별명을 가진 그에게 ‘민선’은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여리고 가냘픈 존재다. 하지만 ‘민선’을 대하는 ‘영민’ 역시 마냥 거들먹거리며 찝쩍대는 양아치는 아니다. 그녀에는 진지하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에서 객석까지 그의 진심이 그대로 전달된다. ‘악인’이 아닌 ‘악동’이 되었기에 가능한 감정선이다.

“따지고 보면 ‘영민’이 악역이라면 악역이죠. 하지만 관객들이 소스라치게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못되고 얄미운 바람둥이지만, ‘오죽이나 민선이가 좋으면 저럴까’ 싶을 만큼 순수한 면을 지니고 있어요. 그 마음을 관객들이 공감하며 받아들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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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자신과 ‘영민’의 닮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거침없이 “순정”이라고 답한다. 그의 눈망울에서 ‘영민’의 그것이 읽힌다. 캐릭터상 관객들에게 웃음을 줘야한다는 부담이 컸을 것 같다는 질문에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음을 내놓는다. 그 미소 안에 배우로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마음고생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짠하다.

“무엇보다 이전에 ‘영민’을 맡았던 배우들과는 다른 개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래서 웃음코드를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죠. 그 과정에서 남모를 시행착오도 겪었어요. 초창기에는 너무 느끼해서 거부감이 든다는 지적도 많았고. 그걸 극복하려고 무척 많이 고민했어요”

그는 귀여움과 느끼함을 동시에 보여주기로 했다. 마치 한때 개그 프로그램의 인기 캐릭터였던 ‘리마리오’처럼. 이제 그에게 느끼함을 지적하는 관객은 드물다. 오히려 그의 능글맞은 표정은 연기를 더욱 차지게 하는 감칠맛 나는 양념이 된다.

박세준의 롤모델은 뮤지컬 배우 박호산이다. 그의 사촌형이기도 하다. 박호산은 ‘빨래’ ‘광화문연가’ ‘해마’ 등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열연을 펼치는 실력파 배우. 최근 화제의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허균’ 역에 캐스팅돼 팬들의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어려서부터 형의 공연을 보고 꿈을 키워왔어요. 무대 위 형의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예요. 다른 말이 필요 없죠. 그냥 잘해요. 어떤 역할을 하던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선 굵은 연기를 펼쳐내죠. 형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뮤지컬, 연극 등 무대공연뿐 아니라 방송이나 영화 등 다른 매체로의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는 그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은 무어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의외다.

“극중 ‘지환’은 나이 서른이 넘도록 변변한 사랑한번 못해본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 작품의 ‘지환’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지고지순하고 순수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죠. ‘영민’이가 그려내는 순정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꼭 도전하고 싶어요”

박세준이 그려내는 ‘순정파 지환’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자못 궁금해진다. 2030세대에게는 열광적인 에너지를, 4050세대에게는 추억의 향수를 자극할 순수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는 오는 28일까지 대학로 뮤디스홀에서 공연한다. 3월부터는 장소를 옮겨 브로드웨이 아트홀에서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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