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北인권운동가 전향한 고지마 씨 "납북자만 문제 아냐"


재일교포 북송에 동원된 만경봉호. 일본 독자제재로 현재 니가타항 입항이 금지됐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59년 시작된 재일교포 북송 사업에 관여한 일본인이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북한인권운동가로 전향해 활동 중이라고 31일 일본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니가타(新潟)시에 거주하는 고지마 하루노리(小島晴則. 85)씨는 니가타현 귀국협력회 사무국원으로 67년 제155차 선박까지 총 8만 명 이상을 직접 배웅했다.

그가 '공화국(북한)은 지삭낙원'이라는 선전에 회의감을 느낀 건 64년이었다. 당시 방북하고서 북송 교포들로부터 "빈곤하다" "발언의 자유가 없다" 등 호소를 들었다. 귀국 후에도 귀환을 희망하는 편지가 잇따랐다.

결국 "들었던 것과 다르다. 이건 독재국가다"라는 생각에 90년부터 북한 인권운동가로 전향했다.

84년 북송사업 종료 때까지 재일교포와 함께 북한으로 간 1800명 이상의 일본인 여성 귀환 및 일본인 납북자 석방운동에 나섰다. 이들 '일본인 처'는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고지마 씨는 본인이 직접 촬영한 1천 장 이상의 북송 현장 사진을 담은 사진집 '귀국자 9만3천여 명 - 마지막 인사'를 최근 출판했다. 사진들 중에는 귀국선에 탄 채 불안한 듯 부두를 내려다보는 교포 모습도 있다.

고지마 씨는 "자책하는 마음에 3년에 걸쳐 지금까지 수중에 남은 사진을 선별했다"며 "납북자 외에도 일본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여성감독 양영희 씨가 지난 2012년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가족의 나라'에는 북송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양 감독의 세 오빠는 부친 권유로 북한으로 향했다. 이들은 끝내 일본에 남은 가족과 상봉하지 못했다.

뒤늦게야 한 오빠와의 면회가 허용됐지만 이미 정신질환에 걸린 상태였다. 나머지 두 오빠는 자살하거나 처형됐다. 양 감독의 부친은 평생 자책감에 시달리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북송사업은 북한 정권의 일본 지부 역할을 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주도했다. 북한은 조총련 협조 아래 선박 만경봉호로 교포들을 실어날랐다.

조총련은 민족학교를 운영하면서 '평화단체'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민족학교에서도 '김일성 숭배'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일본 각 지자체는 보조금 지원을 중단했다.

오사카 지방재판소(지법)는 지난달 26일 민족학교 측 소송을 기각했다. 오사카(大阪)부는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김일성 등 초상화 철거, 조총련과의 관계 중단 등을 제시했다.

조총련과 달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계 민족학교는 일본 정부 및 각 지자체와 원활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 독자적 대북제재를 실시하면서 만경봉호의 자국 입항을 불허하고 있다. 일본인 납북자 존재를 인정한 북한은 납북실태 재조사를 미끼로 입항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가수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는 북송교포 귀환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조총련은 일본인 납북, 육영수 여사 암살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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