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4000만원 소득 20억 자산가와 연 500만원 일용직, 같은 보험료 부과

[투데이코리아 최고운 기자] 4월 건강보험료 정산을 앞두고 용역이나 비정규직같은 일자리 약자들은 걱정이 많다. 지난해 바뀐 건보제도가 1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에게 유리하고 용역회사에서 일자리를 받는 용역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기때문이다.

건보공단은 지난달 26일 모든 사업장에 2016년도에 근로자에게 지급한 보수총액과 근무 월수를 기재한 '보수총액통보서'를 작성해 팩스, 우편, 지사 방문 등으로 3월 10일까지 신고해달라고 통보했다.

4월 직장가입자 건보료를 정산하기 위해서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는 원래 당월 받은 보수액에 보험료율을 곱해 산출하고 절반은 근로자가, 나머지 절반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임금이나 호봉이 인상되거나 인하되고 보너스를 받아서 당월 보수액이 변동되면 건보료도 달라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사업장은 임직원의 보수월액이 바뀔 때마다 일일이 건보공단에 신고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사업장의 건강보험 관련 업무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에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2000년부터 직장건보료는 전년도 보수총액을 기준으로 우선 부과하고 4월에 실제 받은 보수총액에 맞게 보험료를 재산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를 통해 매년 4월분 보험료에 그 차액을 반영해 추가 부과하거나 반환해 준다.

정산 결과 지난해 월급 등이 올라서 소득이 증가한 직장인은 건보료를 더 내야 하고, 임금이 깎인 직장인은 건보료를 돌려받는다.

하지만 연말정산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보료 정산을 하다보니, 한꺼번에 추가로 많은 정산보험료를 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는 마치 건보료가 인상된 것으로 느끼게 된다. '4월 건보료 폭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이런 4월 건보료 정산 소동을 줄이고자 2016년부터 1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건보료 부과방식을 기존의 정산방식에서 당월 보수에 보험료를 매기는 방식으로 바꿔 의무적으로 적용, 시행했다.

100인 이상 사업장은 호봉 승급이나 임금 인상, 성과급 지급 등으로 임직원의 당월 보수가 변경되면 건보공단이나 담당 지사에 반드시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100인 이상 사업장에 다니는 직장가입자는 올해는 건보료 정산으로 정산보험료를 더 내거나 돌려받는 불편을 겪지 않게 됐다.

문제는 정부의 개편안이 시행되더라도 용역이나 비정규직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경감혜택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재산보험료 공제액은 500~1200만원(1단계) 공제에 그치고, 자동차 보험료는 1600cc이하만 면제해줘 해당되지 않는다. 게다가 용역 등은 소득기준 피부양자 자격기준이 갈수록 강화돼 근로소득이 2000만원(3단계)을 초과할 경우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보험료를 물어야 한다. 때문에 오히려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맞벌이 부부 비전형근로자들이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반면, 연금과 금융소득 등 임금 외 소득에 대한 부과기준과 피부양자 자격기준을 3400만원으로 설정, 부담능력이 있는 가입자 및 무임승차 피부양자 대부분을 그대로 방치했다. 3단계까지 가더라도 9억원 이하 재산 보유자는 연간 생계가능소득 1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보험료를 낸다. 최저보험료를 내는 계층은 연간 총수입 1000만원이하(3단계 3360만원)인 사람들이고 이보다 소득이 많으면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를 계속 내야한다.

현행 부과체계로는 시가 18억원(과표 9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하고 금융, 연금, 근로기타 소득이 각각 4000만원씩 총 1억2000만원인 자산가도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해 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반면, 일자리 질이 극도로 나쁘고 늘 ‘을’일 수 밖에 없는 용역같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용역업체에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연소득(사업소득)이 500만원을 넘었다는 이유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과중한 보험료 부담에 허덕인다. 건보료 부과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게 이들 일자리 약자들이다.

용역근로자는 전국적으로 수십만을 헤아린다.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기준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644만4000명(임금근로자의 32.8%) 가운데 4대보험 가입이 안되는 비전형근로자는 파견(20만1000명), 용역(69만6000명), 특수형태고용(49만4000명), 가정내근로(4만2000명), 일일(단기) 근로(86만3000명) 등 총 222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소득수준은 건보 직장가입자들인 상용직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통계청의 가계금융ㆍ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임시ㆍ일용근로자 가구소득은 2902만원이고, 상용근로자는 6341만원에 달했다. 상용직에 비해 소득은 절반도 안되면서 ‘건보료 폭탄’을 맞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될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보험료 관련 민원 가운데 이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2015년 건강보험공단에 제기된 총민원 9008만건 중 건보료 민원이 6725만건(74.7%)에 달했고, 2016년에는 9550만건 중 7390만 건(77.4%)으로 매년 늘고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연간 금융소득 4000만원을 올리는 20억원대 자산가와 연소득 500만원인 사람을 같은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현실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보험료 부과와 관련한 민원 가운데 상당수가 용역 파견 등 질낮은 일자리 약자들이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용역 근로 등 특수한 사례에 맞춰 보험료 부과체계를 조정할 수는 없다”며 “건보료 부과체계의 문제라기 보다 과세행정과 근로ㆍ고용관계로 인한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용역 파견 등 근로자이면서 개인사업주로 등록돼 지역가입자로 건보료를 물게되는 일자리 약자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용역근로자의 경우 2014년 8월 60만4000명에서 2015년 8월 65만6000명, 2016년 8월 69만6000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배부른 자들의 무임승차를 차단하고 일자리 약자들의 건보료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 화급한데 정치권에선 탄핵정국과 조기대선에만 골몰해 있다. 정부의 3년주기 3단계 개편은 너무 오래 걸린다. 결국 이들 일자리 약자들의 건보료 부담 해소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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