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줄 꽂아놓고 홀연히 잠에 든 제/ 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는 고야/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조선후기 김창업-”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귐을 담은 책이 나왔다. 이익과 권력을 떠나 서로의 사유와 삶을 존중한 선인들의 사귐을 다룬 이승수의 '거문고 줄 꽂아 놓고'가 그것. 작가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에 남은 감동적인 일화들, 주고받은 편지와 시, 그림 등을 재료로 스물네 사람의 사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나옹화상과 이색, 정몽주와 정도전, 김시습과 남효온, 성운과 조식, 이황과 이이, 양사업과 휴정, 이항복과 이덕형, 허균과 매창, 김상헌과 최명길, 임경업·이완과 녹림객, 이익과 안정복, 나빙과 박제가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을 아우르는 만남의 폭과 너비는 실로 깊고도 넓다.

이런 아름다운 우정을 다루면서도 정작 저자는 우정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사회는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외려 이 글을 통해 우정과 친구라는 이름의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고.

저자가 풀어낸 옛 사람들의 좋은 친구는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 빈 공간을 간직하고 견디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가장 바람직한 우정은 “천지간에 홀로설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성립”된다고도 이 책은 적고 있다. 이에 저자는 숙명으로 주어진 고독, 즉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사유를 의리와 집단에 떠넘기려 하는 오늘의 우정에 일침을 가한다.

인맥이 재산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한번쯤 주위를 둘러보고 내 있음의 자리를 생각해 보게끔 만드는 '거문고 줄 꽂아놓고'는 낮고도 깊은 울림으로 묻는다. 지금 당신의 사귐은 어떠냐고. (이승수/ 돌베개/ 9,500)

채지혜 기자 cjh@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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