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승리 기자
▲ 서승리 기자
‘2조 1,491억 달러, 한화 약 2,867조 9,740억원’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는 엔비디아의 이달 5일 기준 시가 총액으로 국내 코스피의 시가총액(2월 27일 종가 기준)인 2136조원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코스피에 상장해 있는 950여개의 기업의 시가총액을 모두 더한 것보다 기업 하나의 시가총액이 약 500조원 가량 높다는 점은 국내 증시의 가치가 과연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최근 국내 투자업계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인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당국은 국내 증시 부양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달 26일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윤곽이 드러났지만, 주변에서는 시큰둥한 반응만 나오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당국이 공개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율성’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상장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금융위원회 측은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기업 노력을 강제하는 것 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며 “기업 밸류업의 성패는 기업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해 시장과 소통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강제성이 없어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소한의 구체적인 강제성이 있어야 오히려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해당 프로그램의 벤치마킹 모델이었던 일본의 주가 부양 프로그램과 비교하며 저조한 참여율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의 경우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과 같은 프라임과 스탠다드 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에 대해 연간 1회의 관련 공시를 의무화한 바 있다.
 
또한 일본거래소(JPX)는 지난해 PBR(순자산비율) 1배 미만 상태가 지속되면 상장 폐지 목록에 오를 수 있다는 강도 높은 제재안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금융위도 일본의 프로그램보다 기업들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원체계도 보다 강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초안만을 봤을 때 미비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핵심 유인책으로 언급됐던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감면 혜택과 상속세 인하 등의 세제 감면 혜택이 이번 발표에는 관련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근본적인 원인 분석 없이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빠르게 추진된다는 점도 거론된다. 현재 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의 근원적 원인으로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가 꼽히는데 이번 방안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도 제외됐다.
 
최근 30여년 만에 역대급 호황기를 맞은 일본 증시의 배경에는 밸류업 정책뿐만 아니라 10여년 전 아베 신조 내각 당시 추진해온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라는 탄탄한 단초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업의 시장가치와 전체 증시에 있어 기업 지배구조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통상적으로 대주주들이 기업 승계를 위해 낮은 주가를 선호하고 주주 환원을 반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로 주가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것은 오랜기간 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기업 상속세 관련 제도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은 기업의 실적과 함께 정부의 정책에도 민감하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앞서 정부는 ‘공매도 한시적 금지’, ‘대주주 요건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전 폐지’ 등에 이어 ‘밸류업 프로그램’도 공개했으나 일각에서는 심도있는 분석없이 다가오는 총선을 의식한 채 빠르게만 추진한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상반기 중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추가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추후 에 보강되는 방침들이 기업의 ‘자율성’에만 의존하고 막연하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을 기대해야 한다는 식의 진부한 내용이라면, 국내 증시 부양을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는 설득력은 낮아질 것이다.
 
물론 주가는 대내외 여건과 함께 많은 변수가 작용해서 결정되기에 밸류업 프로그램만으로 국내증시가 상승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추가적인 보완으로 실효성이 잘 나타나 향후 기업 하나의 시가총액이 국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보다 높아지는 일은 없길 기대해본다.
 
때로는 당근보다 채찍도 필요할 때가 있다. 향후 추가 발표 예정인 ‘밸류업 프로그램’에는 합리적 수준의 강제성을 통해 참여율을 확대해야 하며 지배구조 개선 등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도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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